2017/06/19 14:52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1) 실타래

여자의 연애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나는 그 말이 무엇보다 싫었다. 차라리 나에게 뭔가 결함이 있다고 말하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새로 만들 수 없잖아. 어렸을 때는 무관심한 그에게 애정을 받고 싶었고, 커서는 그것 때문에 연애마저 똑바로 못 할 거라고 비난당하더니. 내게는 그 말이 옮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점쟁이에게 비싼 돈을 주고 폭언을 들은 기분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가 그렇다며 웃었다.


그래, 그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잖아.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세상에는 내 생각보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문제가 산처럼 있다고. 그걸 알기 전에는 일일이 상처받고 괴로워했지만, 어느 순간이 되자 내려놓게 되어 버렸다. 좋은 걸까. 적당히 포기하게 된 것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지는 이유는, 포기해 버린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만나기도 전에 이미 놓아버렸기 때문에 거기에 휘둘리고 괴로워하고 뭐든지 바꿔보려고 노력할 마음이 들지 않으니까.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어진다. 체에 모두 거르고 나면 거기에 남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아무도 없겠지, 라고 생각한 순간 네가 떠올랐다. 술김에 내가 뭔가 놓친 걸까. 네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시작은 너무나 충동적이었다. 연남동의 그 거리에서 남자에게 그 말을 들은 직후였으니까.


"우리, 사귀지 말고 데이트나 하는 사이 할까?"

뭐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내가 그런 여자처럼 보여요?"

목에 눈물이 꽉 메여서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걷던 그 길. 나는 나도 모르게 휴대폰에 있는 네 번호를 찾았다.


"무슨 일이야?"


수화기 너머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만도 했다. 네 번호는 알았어도 전화 한 번 해본 적 없었으니까. 우리는 몇 번이나 단둘이 대화를 나누었을까. 친구들끼리 함께 간 여행지에서, 모두 잠들고 나서야 우리는 둘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소주 몇 병이 차례로 비워지고, 한참 하늘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그가 내 손을 잡았다. 뭐라고 말을 덧붙이려는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게 전부인 관계였다.


“아주 슬픈 일이 있었어.”


그런 남자를 향해 무언가 안에 있는 걸 쏟아내려는듯, 울기 시작했다. 의외로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괜찮아, 많이 놀랬지. 상냥하게 달래주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넌 너무나 친절해서, 계속해서 그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이렇게 시작한 연애가 어떻게 끝나 버리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난 아마 또다시 똑같은 실수를 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 날, 내 손은 왜 잡았어?”

우리는 손을 잡았다고 해서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지 않았다. 여행 이후 우리는 둘 다 입을 다물었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허물없이 지냈다. 간혹 네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외로움을 메우기 위해 그날의 일을 끄집어낸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뻔뻔했고 이기적이었다.

“그거야…….”

너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상한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막 사과를 하려고 했을 때쯤, 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널 좋아하니까.”


사랑받고 싶었다. 이곳저곳에서 치이고 베인 상처가 아파서, 나도 이제 견딜 수가 없다고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었다. 나만이 그런 것이 아닐지라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만 오롯이 보이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거다. 스스로는 그러지 못하면서도.


“……나랑 만날래?”


그래도 확실한 건, 그날 나를 구한 건 너였다.

누구에게라도 손을 뻗고 싶었던 그때 나를 구해줬던 건 너밖에 없었다고.



덧글

  • 우주여자 2017/06/20 01:02 #

    와 글 정말 잘쓰시네요
  • 카나리아 2017/06/20 09:04 #

    부족한 글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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