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3 15:31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3) 실타래

내가 정말로 갖고 싶었던 건 뭘까. 가끔 알아도 외면해 버리는 것들이 있다. 언제나 잘 덮어서 귀퉁이에 넣어두었다고 안심했지만,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면 손 하나 대지 않더라도 튀어나와 버린다.


나는 남자 K를 생각했다. 이따금 그의 이름은 목구멍을 기어나와,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지만 그때마다 애써 삼키고는 했다. 나는 그가 두려웠다. 이후의 모든 연애가 그런 식으로 망가져버릴 것만 같아서.


하지만 헤어지자고 말한 사람은 나였다. 돌이켜 보더라도 그때가 되면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앞에서는 내 감정이 깨진 유리병처럼 마구 흩어졌다. 그의 언어는 언제나 모호했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잘난 척하지 않았던가. “말 같은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어. 행동을 봐야 해. 행동이 그 남자의 진심이니까.”


“나 좋아해?”

몇 번이나 그렇게 물었다. 행동이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진 않았다. 애초에, 모든 것을 내어줄만큼 희생적인 사람이 되지도 못했다. 나는 그의 감정을 온전히 내가 소유하기를 바랬다. 그에게 나는 다른 좋은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였고 그는 내 마음 속에 오롯이 떠 있었다. 딱 하나. 정말로 갖고 싶던 것.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 욕심이 모든 걸 망쳐 버릴 거라고.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약속해줄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물었다. 너는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무얼 바라는지 너도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무서워서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서로 생쥐처럼 굴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다. “몇 년 뒤라도 좋으니까,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고.” 그렇다면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혼 약속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 없는 건가? 나는 스스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멍청한 말이다.


너라면 단칸방에서 살아도 행복할 것 같았다는 말은 반은 거짓말이었다. 난 불안했다. 자주 임금이 체불되는 너의 회사도, 그러면서도 결코 그 회사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 네 태도도, 전부 나를 시궁창으로 끌고 갈 것 같아 숨이 막혔다. 나는 그런 불안함을 약속으로 채우려 들었다. 너를 위해 전부를 내놓을 수 있을 것처럼 말했지만 너에게 나를 감출 수는 없었다. 친구가 말했다. “그 자식은 비겁해. 네가 그만큼 좋아할만한 사람이 아니야.”


비겁한 건 누구였을까. 시궁창으로 몰고 간 건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왜, 그 책임을 오롯이 네게만 지우고 싶었던 걸까. 무책임한 태도는 누가 취하고 있었던 걸까. 거기에 대한 대답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것이, 다른 남자와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자꾸만 걸리게 되는 진짜 이유인 걸까.


“있잖아.”

“응.”

“좋아지는 게 무서워.”


그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표정은 알 수 없다. 지금 무얼 느끼는지. 그저 추측해볼 뿐이다.


“잘 되든 안 되든 다.”

“나도 가끔은 그럴 때가 있지만...”


나는 모르겠다. 너를. 슬픈 것은, 갈수록 연애의 끝을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연애가 시작되면 먼 훗날의 행복한 삶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방을 잃었을 때를 생각해 버린다. 얼마나 허전할까.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텅 비어 버렸을까. 한없이 채워지기를 두려워하면서.


“지금은 그런 건 생각하지 않을래.”

상냥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생각하지 말자, 우리. 지금 행복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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